CA 산 로렌소

 



[image]
'''CA 산 로렌소'''
'''C.A. San Lorenzo'''
'''정식 명칭'''
Club Atlético San Lorenzo de Almagro
'''별칭 '''
El Ciclón(사이클론), Los Cuervos(까마귀)
'''창단'''
1908년 4월 1일
'''소속 리그'''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Primera División)
'''연고지'''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홈 구장'''
에스타디오 페드로 비데가인(Estadio Pedro Bidegain) / 43,494명 수용 가능
'''회장'''
마티아스 라멘스(Matías Lammens)
'''감독'''
마리아노 소소(Mariano Soso)
'''공식 홈 페이지'''

'''우승 기록'''
'''프리메라 디비시온 (1부)'''
(15회)

1923 AAm, 1924 AAm, 1927, 1933L, 1936 (Copa de Honor), 1946, 1959, 1968M, 1972M, 1972N, 1974N, 1995C, 2001C, 2007C, 2013I[1]
'''프리메라 디비시온 B (2부)'''
(2회)

1914, 1982
'''수페르코파 아르헨티나'''
(1회)

2015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2014
'''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2002
'''코파 메르코수르'''
(1회)

2001
1. 개요
2. 역사
3. 주요 선수


1. 개요


산 로렌소는 보카, 리베르, 인데펜디엔테, 라싱과 함께 아르헨티나 축구의 5대 클럽(los cinco grandes)으로 꼽히고 일반적으로 5대 클럽 중 5번째로 자리한다. 최근에는 거의 매년 컵 대회 출전권을 얻는 등 안정된 성적을 남기고 있으며 관중 동원 수는 보카, 리베르에 이어 3위이다. 전국구 클럽이지만, 서포터들은 현지 보에도(Boedo) 지구에 대한 사랑이 강하고 우승 후 같은 지역에 있는 산후안 대로와 보에도 대로의 교차로에 집결한다. 다른 전국구 클럽의 서포터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심에 있는 오벨리스코에 모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라이벌은 보에도에 인접한 파르케 파트리시오스(Parque Patricios) 지역의 우라칸이다. 이 대전과 다른 5대 클럽과의 대전은 시코(더비)로 불린다.
축구 클럽도 있지만, 다른 스포츠 종목으로 풋살, 럭비, 농구, 배구, 핸드볼, 테니스, 아이스 하키, 필드 하키, 수영, 볼링, 가라데, 태권도, 피겨 스케이팅 등이 있는 종합 스포츠 클럽이다.

2. 역사


탄생 계기는 알마그로 지역 교회 인근의 거리에서 축구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청소년 그룹과 신부 한 명의 만남이었다. 어느날 평소처럼 축구를 하고 있던 그룹의 한 사람이 차에 치일 뻔하였다. 그것을 목격한 로렌소 마사 신부가 매주 일요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청소년들에게 성당의 부지를 제공하였다. 그러면 남자들은 성당과 같은 안전한 장소에서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신부는 읽고 쓰기 등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것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쳤다.
이렇게 탄생한 만남과 교류가 곧 정식 클럽 설립으로 발전하였다. 머지않아 로렌조 마사 신부 동석 하에 클럽의 명칭 결정을 테마로 첫 번째 집회가 열렸다. 청소년의 다수는 알마그로 지역 출신으로, 그들 사이에서 언제 부터인가 자칭하고 있었던 Los Forzosos de Almagro(알마그로의 사나운 사람들)을 그대로 정식 명칭으로 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지만, 신부는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의를 제기하였다. 다시 생각한 청소년들이 신부에 대한 감사와 경의에서 그 이름을 딴 San Lorenzo(聖 로렌소)를 명칭으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신부는 놀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순교자 성 로렌소(라우렌시오, Sanctus Laurentius) 및 산 로렌소 전투에서 유래하는 이름이기에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의 리더와 같은 존재였던 페데리코 몬티가 "알마그로의"라는 의미로 데 알마그로(de Almagro)를 추가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청소년 일동들은 이에 대해 수긍하였고, 클럽의 정식 명칭이 정해졌다. 1908년 4월 1일 산 로렌소 데 알마그로(San Lorenzo de Almagro)라는 클럽 이름이 탄생하였다.
아마추어 시절 1923년 최초로 우승하였고, 프로화 이후 1933년 처음 1부 리그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1946년, 1959년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중상위권을 맴돌다가, 1968년부터 1974년까지 4개의 타이틀을 얻는 등 많은 기록을 남기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1967년에서 1985년까지 리그에서 마지막 해를 제외한 매년 메트로폴리타노와 나시오날이라는 두 대회가 열렸다. 대회 방식은 계절에 따라 달랐지만, 산 로렌소는 먼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와 산타페의 총 22팀이 참가한 1968년의 메트로폴리타노를 우승하였다. 이 대회는 처음에 11팀씩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조별 리그를 치른 다음 각 그룹의 상위 2팀이 중립 지역에서 단판 승부의 결승전을 겨뤘다. 그룹 A에 들어간 산 로렌소는 22경기 14승 8무 0패로 마감하며 1위로 조를 통과하였다. 결선 토너먼트에서는 준결승에서 B조 2위의 리버와 싸워 3-1로 승리하였고, 결승에서도 에스투디안테스와 겨뤄 2-1로 물리쳤다. 이것은 프로화된 아르헨티나 리그 사상 최초의 무패 우승이었다.
1972년에는 리그 사상 최초로 동일 연도의 2대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와 산타페의 총 18팀이 참가하는 홈 앤 어웨이 리그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우승한 산 로렌소는 전국 26개 팀에서 겨룬 나시오날에서도 우승하였다. 1968년 메트로폴리타노와 거의 같은 대회 방식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는 A조에서 13경기 10승 3무 0패로 승점 23점으로 1위 통과하였다. 결승에서 리버를 1-0로 꺾고 리그 2번째 무패 우승을 달성하였다.
1974년에도 전국에서 36팀 참가, 조별 리그를 거쳐 최종 라운드라는 흐름에서 열린 나시오날에서 우승하였다.
그러나 1975년 이후 클럽의 재정난 악화로 자산 매각 등이 이뤄졌으며 1981년 빅 5로서는 최초로 2부 리그로 강등당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그러나 1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였고, 때때로 우승 경쟁에 참여하며 성장하였다. 1993년에는 팔았던 홈 구장을 구 스타디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 마침내 1995년, 21년 만에 1부 리그에서 우승하였다. 페예그리니 감독을 영입한 2001년 대회에서 리그 최다인 13연승을 기록하며 15승 2무 2패로 우승하였다. 그리고 2007년 클라우수라에서 가스톤 페르난데스, 에세키엘 라베시 등의 활약으로 승점 45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4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2]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통해 처음으로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고,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0-2로 패배해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image]
프란치스코 교황의 산 로렌소 회원카드
여담으로,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팀의 열성적인 서포터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에는 시즌권 티켓도 샀다고 한다.

3. 주요 선수


[1] AAm은 아마추어, L은 리가 아르헨티나 데 풋볼, M는 메트로폴리타노 N은 나시오날 A는 아페르투라, C는 클라우스라, I는 이니시알의 약자.[2]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 로렌소의 서포터다.